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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하다. 며칠 연달아 비가 내려서 바깥이 많이 식었다. 그늘에 있어도 숨을 막아서던 습기도 물러가서 비는 오는데 상쾌하게 되었다. 창문들 닫고 자고 새벽에는 이불을 당겨 덮는다.

어제 이승희씨가 다녀갔다. 한참 멈추어있는 책 원고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중심을 잡아야 하고, 타겟을 확실히 해야하고, 좀 더 쉽게 읽힐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비몽사몽 중에 갑자기 원고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서둘러 깼다.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상하이를 사진으로 말할까 보다. 사진을 많이 담는 책이 아니라, 사진적인 장면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먼지 쌓인 원고들을 챙겨서 원고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로 다시 가야겠다. 자전거를 타고 가야겠다. 어디 길가에 앉아서 그 길의 질감을 문장으로 옮겨야겠다. 그리고, 오직 사진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보태야겠다.

베토벤과 말러는 끝판대장처럼 남겨두려고 한다. 우선은 쉽고 인상적으로 들리는 드보르작과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하며 듣는데, 베토벤은 대충만 들어봐도 도대체 어렵고 말러는 워낙 다들 어렵다고 하고 또 호불호가 분명해서 시작도 못 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제 지나갈 일이 있어서 말러 교향곡 두 개를 사 왔다. 분석하며 들을 생각은 꿈도 못 꾼다. 다만, 말러의 교향곡들은 감정을 분해하고 해석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폭풍처럼 몰아친다니까, 현대 회화쯤 되지 않나 싶고, 현대회화라면 제법 즐길 수 있으니까 말러도 어떻게 되어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다. 교향곡을 들을 때는 밤 시간에, 볼륨을 높이고, 방 안에 불은 모두 끄고, 거실 가운데 서서 리모콘을 한 손에 들고 지휘하듯 듣는다. 온몸으로 들으면, 교향곡이 좀 더 가까이 들린다.

새로 온 책들을 보는데, 아무래도 좀 무게가 있는 책들은 뒤로 미루게 되고 가볍고 흥미로운 책들을 먼저 보게 된다. 일해야 되는데 일도 안 하고 본다. 균형을 좀 맞춰야겠는데, 가벼운 책들은 언제 봐도 재밌으니까 화장실에 있을 때나 토막 시간에 잠깐씩 보고, 제대로 책상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읽고싶은 책보다 읽어야 되는 책들을 좀 보는 것이 맞다. 잘 안 되지만.

암벽화를 샀다. 암벽화는 일반 신발과 달라서 마찰력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발의 맨 앞과 맨 뒤의 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아주 작게 신는다. 그래서 신고 있으면 발가락이 아프다. 실내암장에 가서 매달려 봤는데, 처음에는 그럴 듯해보여도 잠시만 운동하면 곧 손 끝에 힘이 빠져서 버티기 힘들다. 한 동안 몸이 적응해야 제법 벽을 타겠다. 전신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팔 힘이 충분하지 못 해서, 팔의 체력에 맞추니 하체는 거의 놀다시피 한다. 덕분에 두어 시간 운동하고 나와도 팔만 좀 버겁고 기분으로는 자전거라도 두어 시간 더 탈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암장까지 가서 벽을 타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면 되나? 사실 실제 암벽 등반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실내 암장에서 운동삼아 하는 것이 딱이다. 그런데 자꾸만 쇼핑몰에서 새 배낭을 검색하고 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 요즘 들어 지름신께서 우리 집에 세들어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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