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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너, 동생에게.

 

동생아. 한국에는 잘 돌아갔니? 처음으로 함께 한 여행은 오래 기억에 남을 모양이다. 검게 탄 팔 위에 길의 흔적이 아직 선명하고, 비를 뚫고 달려온 두 대의 자전거는 여전히 진흙을 뒤집어 쓰고 멈춰 있다. 책 몇 권을 추천해 달라는 네 말은 반갑고 든든했다. 경영학이라는 네 전공과, 전공서적을 제외하면 평소 그다지 책과 친하지 않은 네 상황을 고려해야 되겠지? 책 읽기에 정답은 없겠지만, 동생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동생이 좀 더 삶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형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줄 수 있겠니.

 

익숙한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네 전공과 관련해서 권하고 싶은 책은 자본론나쁜 사마리아인들이다. 잘 모르지만, 경영학은 경제, 경영과 관련된 대부분의 내용을 숫자로 치환하고, 그 숫자들의 배치를 통해 산술적인 크기를 성공과 실패로 재는 학문인 듯하구나. ‘잘 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경영학적 기술의 목표라면, 추천한 두 책은 왜 잘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단다. 자본론의 이론을 붉은 색의 이념과 연결시키는 것은 이미 시대를 한참 지난 촌스러운 발상일 것이다. 그 성과를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자본주의는 분명히 인간의 동물적 이기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이론이지 않니? 그에 비해서 비록 실패한 것처럼 보이나 마르크스가 보여준 유토피아적 이상은 충분히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그리고 살펴서 적용할 만한 매력적인 것이라는 생각이란다. 자본론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반론이라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자본주의의 시대를 긍정하되 자유시장경제라는 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는 책이다. 장하준 교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경제학자다. 책의 논리를 전개하는 데 있어서 국민국가라는 개념을 그 중심에 둔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지만, 어쩔 수 없는 국민국가 중심의 세계사에서, 그리고 선진국과 후진국, 앞선 자와 쫓아가는 자로 나뉜 형세 속에서, 자유시장경제라는 것이 얼마나 선진국의 입맛에 맞춘 그들만의 구호인지, 자유무역이라는 것이 어떻게 후진국의 계속적 빈곤을 낳을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저자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네가 그토록 밤을 새며 몇 년을 공부하고 있는 경영이라는 학문, 그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운 것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쓸지 고민해 보기를 바라는 뜻이다.

 

대학생이라는 위치는 다양한 것을 마음껏 시도해도 좋은 인생의 어느 계절이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것을 겪고 채워야 마땅한 시간이다. 네가 전공에만 묶여 좋은 학점과 몇 개의 자격증만을 향해 분주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주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제작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네 의식의 경계를 넓혀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우주는 100억 년에서 200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아마도 종말에 이를 것이다. 그 긴 시간과 끝없는 공간의 크기 안에서 별들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간다. 우주에 대한 통찰은, 일상의 많은 일들에 대한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단다. 아마 우리가 아는 제일 유명한 우주학자는 아인슈타인이겠지? 그 외에도 스티븐 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도 있을 테고. 그 중에서도 코스모스는 다양한 도판이 있어서 보기에 재미있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누구나 우주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되어 있어서 권하기에 좋은 책이다. 지구 밖의 우주를 향한 눈을 안으로 돌리면, 같은 땅을 밟고 사는 다른 존재의 우주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어 봤니? 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개미는 인간이 얼마나 편협한 그들만의 세상에 사는지, 오만하고 이기적인 기준에 기대 사고하는지를 반성하게 하는 이야기란다. 이후 등장한 여러 에니메이션에 생각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 책이 인간 중심의 사고에 남긴 균열은 작지만 분명하다고 해야겠다. 이 다음에 나온 그의 책들이 성급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감이 있다면, 이 책은 10년 넘는 기간 동안 100번이 넘는 퇴고를 거친 단단한 이야기이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 개미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 네가 또한 접했으면 하는 분야는 예술이란다. 미학 오디세이 정도면 좋은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네. 우리에게 논객으로 알려진 진중권은 얼핏 말을 앞세우는 사람처럼 보이지. 하지만 돌려 생각하면 그것은 공부하는 사람의 의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단다.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 혜택을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자신이 나고 자란, 그리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기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진중권은 두 가지 방향으로 그 기여를 실천하고 있는 듯한데, 그의 뜻에 대한 찬반을 접어두더라도, 현실에 대한 적극적 의견 표명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믿는 대로 나아가게 힘을 쓰는 것이 그 한 가지일 것이고, 또 하나는 그의 공부를 살려 학문에 기여하는 것이다. 진중권은 학부에서부터 미학을 전공한 이 분야의 전문가다. 미학오디세이는 그의 책들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리고 아마도 가장 쉽게 쓴 미학소개서다. 원시미술에서 현대예술에 이르기까지 왜 인간들은 예술에 집착했고 예술은 그런 인간들의 세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학자들은 어떻게 아름다움을 규정짓고 그 힘을 탐색해 왔는지 그 궤적을 더듬는다.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좁은 지면에 모두 풀어낼 수는 없지만, 단지 유희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좀 더 깊은 부분을 보기 위해서라도 나는 네가 예술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두 번째 편지를 쓴다. 지난 번에 추천한 책들은 보았니?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모르겠구나. 앞선 글에서 진중권의 책을 이야기하며 지식인의 자세에 대해 말했었지. 사람은 더불어 산다. 그리고 모여 사는 그 모양을 사회라고 부른다. 배우는 사람으로서,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사회에 대한 책임은 마땅한 것이다. 한국이 시끄럽다. 옳고 그름을 편가르기 이전에, 너를 둘러싼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믿는 것에 그치지 않고 뜻에 따라 행동하기 바란다.

스콧 니어링은 한 평생 그의 신념대로 미국 사회를 자극했던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교수의 지위를 얻었지만 전쟁과 물질문명이 만든 황폐화를 목격하면서 그의 신념과 다른 사회를 바르게 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스콧 니어링과 그의 부인 헬렌 니어링은 당시 미국인들의 시선으로 이해하기 힘든 전위적인 삶을 살다 갔다. 상품경제의 구속을 거부하고 시골로 들어가 먹을 만큼만 생산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하고 사색하며 지냈다. 그리고 강연과 저술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그들이 배운 것을 사회와 나누었다. 그들은 여러 권의 책을 썼는데,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이 있고, 그들의 먹거리를 소개한 책도 있다. 이 책은 스콧 니어링이 스스로의 의지로 삶을 마감한 후, 그의 아내 헬렌 니어링이 그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그들의 삶은 물질 문명의 횡포를 당당하게 거부한 자연 속의 삶이었고, 스콧 니어링이 보여준 삶의 태도는 지식인이 마땅히 살아야 하는 방향을 보여주었다. 둘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좋은 삶의 동반자를 만나는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리스인 조르바

책을 권하는 편지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책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도 있다. 활자의 논리로 구축하는 허구의 세계에 머물며 현실을 외면하는 함정이다. 책의 가치를 다른 모든 것의 앞에 두어 그 안에서 안주하려는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안을 형은 다시 책으로 네게 권한다. 되는대로 막 산 것 같은 인상에,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그렇게 나이 든 인물이 이 책의 주인공인 조르바이다. 사람들은 왜 이 한 명의 그리스인에 그토록 열광한 것일까? 아마 그 대충 산 것 같은 삶을 관통하는, 사실은 단단한 어떤 삶의 고집 같은 걸 사랑한 것일까? 성인들이 보여주는 삶이 위대하기는 하나 일반인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있는 것이라면, 조르바의 삶은 나와 동시대를 호흡하고 바로 옆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도달한 어떤 경지였기 때문 아닐까? 어쩌면 쉽게 닿을 수 있겠다는 친근감이었을까? 작은 일에 감동하고, 모든 것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자신에게 솔직하고, 옳지 않은 것에 분노하고, 어떤 계산도 없이 좋아하는 대상을 마음껏 사랑하고, 자신의 가치와 본질을 스스로 잘 알고, 삶 앞에 한 치 주저함도 없이 당당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성인들의 삶이 모든 유혹을 끊어내고 스스로를 가두는 과정을 통해 완성에 도달한다면, 조르바는 삶 속의 모든 유혹과 화해하면서 마침내 이루어낸 경지에 닿았기 때문일까? 소설에 등장하는 조르바의 죽음은, 성인의 죽음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앞으로 너의 무대는 세계가 될 것이다. 태어나고 자란 땅이 일생의 무대가 되는 시대는 점차 끝날 것이다. 국가라는 관념을 본질적인 것으로,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것으로 가르치는 현대의 교육 덕분에 너와 나, 우리들의 세대는 어쩔 수 없는 착한 국민으로 살아야 할 운명이다. 국가의 경계를 넘는 지구인의 등장은 우리 다음 세대에서나 겨우 가능할지 모르는 꿈이지만, 형은 네가 편협하고 국수적인 일개 국가의 국민으로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네가 갖는 애정이 국가라는 관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고 자란 땅을 향한 것이면 좋겠다. 그럴 때 비로소 상대에 대해 진심으로 긍정할 수 있고, 나를 지키기 위해 너를 파괴해야 한다는, 너를 막기 위해 내가 무력을 기른다는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해외 생활을 하게 될 때, 네 땅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해 알아두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기 이전에, 네가 성장한 그 땅 본연에 대한 애정이고 끌림인 것이다. 거대한 중국의 건축물들 앞에서, 수려한 일본의 궁궐 앞에서 한국적인 가치, 한국이 갖는 차별적인 미의식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속이 든든할 것이고 기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무렵 역사선생님들이 이끄셨던 국토기행을 통해서, 그리고 이 책을 비롯한 몇 권의 책을 통해서 내 땅에 대한 든든한 애정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최순우 선생의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한국에 간다면,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 앞에 서서 함께 뒤돌아 보고 싶다. 이미 여러 사람이 글을 통해 알렸듯이, 사실 부석사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무량수전을 등지고 돌아섰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한국의 산 능선과 처마를 맞추어 편안하게 안긴 사찰. 그 선이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이고 부석사의 보물이다. 얼마 전 함께 한 여행이 세상의 거대함에 대한 것이었다면, 한국 여행은 뿌리의 깊이에 대한 여행이 되지 않겠니.

 

그리고, 토지

이 책을 권해도 될지 몇 번을 망설였다. 어쩌면 지금 네 상황에서는 그 긴 호흡을 감당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형의 무리한 욕심이라고 해도 좋고, 못 읽어도 좋다. 다만 그 이름이라도 기억 속에 숙제처럼 떠안고 있기를 바란다. 시는 한 줌의 언어로 삶의 정점을 파고드는, 찰나의 순간을 찔러 드는 문학 장르다. 그에 비해 소설의 힘은 스며들어 가는 것이고 긴 호흡 동안 독자 속으로 젖어 드는 것이다. 토지는, 네가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 바로 그 언어로 이루어진 한국 문학의 한 정점이다. 나는 몇 번의 실패 끝에 8개월에 걸쳐 읽기를 마쳤다. 네 언어와 역사를 자랑스럽게 만들 책이다.

 

동생아, 치열하고 살벌한 경쟁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말이다. 너를 낳고 네게 많은 재능을 부여한 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네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역시 잊지 말고 고민하기를 바란다. 너로 인해, 세상이 한 뼘 더 아름다운 곳이 되도록 애쓰기를 빈다. 그리고 책 속에서 그 작은 도움들을 얻기를 바란다.

 

상하이에서,

형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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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gogh 2010.05.23 21:11
    교민잡지에 보내는 원고다. 실제 동생에게 책 몇 권을 추천하기로 지난 여행 때 이야기했었는데 게으른 형은 두어 달 지나서야 겨우 다 적는다. 동생.이라는 단어를 반군.이라는 단어로 바꾸면 내 동생에게 쓰는 개인적 편지가 된다. 물론 혼자 보라고 썼다면, 문장들은 좀 더 살가웠을 것이다. 내용도 없이 무게만 더하는 문장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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